월요일, 4월 11, 2005

My Guitat Story - Part 1

내가 기타라는 것을 처음 배우게 된건 중학교 1학년 가을 소풍이었다.

어디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분명 무슨 유원지나 조선 임금의 "릉"이었으리라.
당시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었지만 벌써 몇몇은 통기타를 들고와 유행하던 송골매와 전영록 그리고 이용의 노래를 멋들어지게 -물론 그때의 시각이지만...- 부르고 있었다. 그때 그 아이들을 바라보는 여학생들의 눈에선 정말 광채가 나고 있었고 그걸 쳐다보는 나를 포함한 남학생들의 결론은 하나였다.
'기타....'

나와 친구들에겐 아직도 오락실이 지상 낙원이었다. 오락비가 50원에서 100원으로 인상될 때의 충격과 50원짜리 오락실을 찾아 서울 변두리와 청계천 세운상가 일대를 방황했었다. 어쩌면 아직은 청소년이라고 부르기엔 어린 치기가 많이 남아있는 상태였었던것 같다. 물론 주변엔 이미 목소리가 자꾸 빗나가는 일명 "삑사리"의 변성기가 찾아온 아이들도 있었다.

남녀공학 시범학교로서 그리고 교복자율화 첫 세대로서 까까머리에 큼지막한 검정 교복을 면한 우리들의 중학생활은 시작되었다. 중학교 1학년때 남녀 합반을 했었지만 남성비가 높았던 세대라 결국 11개 반중에서 우리반만 일명 "홀아비 반"이었다. 고등학교도 남녀공학이었지만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남녀합반은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고, 교복 또한 고등학교 졸업후 자율교복으로 부활하였다.

아뭏튼간에 그 소풍은 참으로 충격이었고, 이젠 오락실을 벗어날 시기가 왔음을 직감한것 같았다. 소풍 바로 다음날 나의 기타 선생님이 되어준 막내 삼촌을 졸라 터미널 지하상가 레코드 가게에서 오천원인가 하는 통기타를 하나 구입했다. 상표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젠 그녀석의 브릿지가 뜨고 넥이 휘어버려 아마 몇 년전 아버지가 버리셨을지도 모른다.

그 기타를 가지고 삼촌이 던져준 누런 종이의 너덜너덜 표지가 떨어진 '최신 기타-아 악보집'과 'Ventures' 레코드를 하나 들고, 'Pipeline', 'Walk don't run'과 같은 주옥같은 곡을 연마하게 되었다. 물론 '최신가요집'의 아주 쉬운 곡들과 함께...

피는 못 속인다고 그랬던가, 빛 바랜 사진들 속 악단 시절의 할아버지와 클래식 기타를 치셨던 작은아버지 그리고 '나 어떻게' 세대의 막내 삼촌 덕택인지, 기타를 손에 잡은지 일년정도 지나자 이제 어느 정도 기본은 갗추게 되었다.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100% 독학이었으니...

그리고 중학교 2학년때 만난 현재 이변호사와의 친분은 나의 음악적 성향과 일렉기타에 대한 이해를 높히는데 매우 큰 자극제 역할을 했다. 'Deep Purple'과 'Led Zepplin' 그리고 'Jimi Hendrix'와 'Yngwie Malmsteen'. 이변호사 집에서 친구들과 모여 감상하던 'Yngwie Malmsteen'의 'Rising Force Japen Live'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통기타와 당시 유행하던 '더블데크 카세트'를 가지고 간 중학교 3학년 가을 소풍. 물론 서울 인근의 무슨무슨 '릉'이었다. 몰래 가져간 나폴레옹과 주니퍼 그리고 선생님이 주도라며 한두잔씩 주시던 맥주에 흠뻑 취한 우리는 'Black Sabbath'의 'Black Sabbath'를 들으며 'Ozzy Ossbourne'의 음산한 목소리에 빠져들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드디어 첫 일렉트릭 기타를 갖게 되었다. 뭘 했는지는 모르지만 어느정도 용돈을 모았고 그 돈으로 낙원상가에서 풍만한 주인아주머니가 인상적이었던 한 가게에서 거금 5만원정도에 기타와 앰프를 구입하게 되었다. 물론 기타는 '팬더코리아' 였고 앰프는 일명 '똘똘이 앰프'였다. 바디에 앰프가 내장되어 9볼트 배터리를 꼽고 해드폰을 쓰면 연주가 되었던 흰색 바디에 검정 피크 보드 합판 기타. 머신헤드엔 당당하게 'Fender Stratocaster - Made in Korea'가 찍혀져 있고, 알수 없는 시리얼 넘버도 있었다. 그래도 트래몰로 암도 있었고, C형 네크에 'Contoured Body'였다.

동생 친구가 기타는 못치지만 장비는 좋은걸 맨날 산다며 2만원에 중고로 내놓았던 PSK이펙터들...
디스토션, 딜레이, 코러스, 플렌져, 콤프레서, 페이져...
이걸 모두 합하면 정말 'Ritchie Blackmore'의 날카로운 사운드, 'Michael Schenker'의 묵직한 험버킹, 'Gary Moore'의 흐느끼는 블루스...
정말 안돼는게 없었다.....라고 당시엔 믿었었다.

나와 색깔이 반대였던 이변호사의 기타와 함께 디스토션 하나에 기타 두대를 꼽고 "짖어댔던" 둘만의 황홀한 Gig. 우린 'Highway Star'의 트윈기타솔로를 서로 감탄하며 행복해했었다. 난 그 기타로 이후 대학 졸업후 까지 서너번의 공연도 했었다. 참 어이없는 짓이었던것 같다. 그 소리를 들었을 청중의 고통을 생각하면...

그 흰색 합판 팬더코리아는 나의 여러번의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는 아마 좋은 곳에서 푹쉬고 있지 않을까 싶다. 얼마전 아버지께서 물론 버리셨을꺼다.

프랑스에 온지 벌써 햇수로 5년이 되었다. 잘하면 2번의 월드컵을 이곳에서 보게 될것 같다.
그 동안 참 정신없이 달려온것 같았다. 이곳에 온 이후론 한번도 기타를 쳐본적도 없었고 손가락의 굳은살은 모두 말랑거리고 더 이상 내 인생에서 기타라는 단어가 사라지는듯 했다.

호주에서 온 Anthony를 만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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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vrai peut quelquefois n'être pas vraisemblable. - Boileau.
진실은 때때로 진실같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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