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10월 23, 2009

사는 이야기... (바람개비 회보 투고글)

대학때 동아리이던 바람개비에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이래저래 끄적인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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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글을 써달라는 세준이의 부탁을 받고 무척이나 고민을 많이 했다. 9월들어서 출장에 회의에 정신없이 바빴던 이유도 있었지만, 어줍잖은 글솜씨로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하나하는 고민이 앞섰었던것 같다. 처음 쓰는 글이라 왠지 뭔가 교육적인 내용이 들어가야 같았서 이것 저것 적어보고 수정하다가 결국은 그냥 내가 프랑스에 와서 살면서 경험한 이야기들을 추억 형식으로 적어보기로 했다. 처음 프랑스에 왔을때 부터 사진을 보며 추억을 더듬어서 정리해보면 결국 나한테도 좋은 일기장이 해서다

우리 가족 이야기는미니홈피 (http://www.cyworld.com/choimanul 또는http://www.cyworld.com/choiten) 그리고 블로그 (http://choiten.blogspot.com)에도 있다. 2004년까지의 이야기는 http://choiten.free.fr 아직 남아있다.


도불 (度佛)

보통 교민들이 도불한지 몇년 이런식으로 말을 많이 한다. 흔한 배낭여행 한번 못해본 나는 2001 여름 처음으로 유럽땅을 밟았었다. 그해 5 느닷없이 찾아온 유학의 기회에 두어달 겨우 불어학원을 다니고 (그래봤자봉쥬르도 못했다..) 박사과정에 가을학기 입학을 위해 여름 두달간 파리에서 어학 연수를 시작했다.

나이 서른둘에 당시 IMF 여파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던 나로서 유학은 인생의 승부였고, 이를 위해서한국에서 결혼후 살던 집의 전세비를 동원해서 파리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도 어렸을때 (아버지의 직장때문에) 몇년간 외국에서 살았던 덕에 외국어를 하는데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고 (듣기 평가는 잘했었다고!!! 나름 뿌듯한 토익 듣기평가 만점기록도 있고..), 무었보다도 이번이 공부할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 두달의 어학연수만에 생활하는데 불편함 없이 불어를 구사할 있게 만들었다.

요즘도 지인들이 물어본다, 어떻게 그렇게 단기간에 불어를 배웠는지그때 마다 대답은 절박하면 됩니다였다. 프랑스의 거리에서 청소하는, 식당에서 서빙하는 수많은 이주자들도 어느정도 불어를 구사한다. 이는 이들이 교육을 많이 받아서가 아니라 정말 생존을 위해 절박했기 때문에 불어를 안다고 믿는다. 이는 어느 나라에서 사는 모든 외국인들에게도 공통된 특징일것이다.

어학연수기간은 돌이켜 보면 그나마 프랑스 문화를 접하는 좋은 기회였던것 같다.

홈스테이를 하던 가정은 은퇴한 의사부부였고 (의사가 영어를 못하는 나라가 프랑스다!), 또한 파리 시내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3층의 저택이었다. 다섯명의 학생만 받고 게다가 남자 성인만 받았다. 여자들은 머리도 길고 해서 집이 지저분해진다는 이유로 안받았다. 집에는 요리사가 따로 있었고, 뚜르 지방에 자신들의 농장에서 채소는 직접 공수해다가 먹었다. 지금도 그때 먹었던 정통 프랑스 요리들과, 달콤한 디저트들이 기억난다.

두달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1년간의 박사과정 코스웤 (DEA 과정) 들어갔다. 3개월은 필수 선택과목 10과목을 각각 15시간씩 수업을 하고 시험을 보고 나머지 기간 동안 연구소나 학교에서 연수를 한후 발표해서 종합 평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다지 공부를 잘하진 못했지만 한국에서 석사과정 이후부터는 나름대로 열심해 했었던터고, 언어가 다를뿐 수학은 공통이라는 생각에 별다른 거부감 없이 수업에 들어갔다.

- 내가 떠나기 전날 저녁식사...양쪽끝의 홈스테이 할머니, 할아버지...모두 돌아가셨다... -

그런데 한마디도 알아들었다!!

주변의 한국 유학생들이 일단 장학금 ( 프랑스 정부 장학금을 받았었다..) 다음해로 연기하고 일년간 어학을 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만일 DEA과정에서 떨어지면 논문과정으로 올라갈 없고 체류비자의 만료일과 겹쳐서 2주안에 출국해야 한다고그런데 이미 늦었었다

아무리 교수들이 칠판에 적는다고 해도 결국은 말로 설명을 하게되고, 그중 어떤 교수는 15시간 수업동안 두장 필기를 하고 모두 말로만 설명하는 경우도 있었다. 3개월간 10과목을 15시간씩 하려면 월요일 부터 금요일 까지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에 6시간씩 수업이 진행되는 강행군이었다. 거의 알아듣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필기한것을 정말로 그려와서 다시 옮겨적으며 사전찾아가며 이해하면 해가 떴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아마 중고등학교때 내가 그렇게 공부했었더라면 서울대 수석을 했지 않았나 싶다.

심지어 시험 문제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상당수의 재시험을 치뤄야 했고 앞서 말한 두장 필기해준 교수의 과목의 경우는 교수가 집필한 책을 사서 찾아가 결혼도 했고, 먹고 살아야하고…”하면서 재발 통과만 시켜달라로 빌기도 했다. 모든 과목을 시험보고 모든 과목을 통과해야 하는 지옥의 DEA과정은, 21명으로 시작해서 14명만 통과가 되었다. 나도 이래저래 해서 겨우겨우 통과가 되었고, 이미장학금을 확보하고 있던 나를 포함한 7명만 논문과정으로 올라갈 있었다. 장학금이 있어야만 (또는 확보할 정도의 성적이 되어야만) 논문과정으로 진행할 있기 때문이다.

나도 한고비 넘긴샘이다

- 홈스테이에서 나온후 집을 못구해 한국인이 운영하는 호텔에서 3개월을 살았다. 정말 사진에 보는게 전부인 아주 작은 옥탑방에서저 조금만한 책상에서 공부했다.. -


프랑스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무료다.

프랑스 학교에서 들어가는 비용은 점심값과 약간의 보험료 (학교에서 사고가 나는 경우를 대비..) 그리고 학생증을 만드는 ( 5천원). 프랑스의 대학은 전공별로 특화가 되어있고, 모든 대학이 평준화가 되어 있다. 다시말해 한국이나 미국식의 종합대학은 없다. 대학 입학은 바깔로레아라는 예비고사를 합격하게 되면 본인이 원하는 전공 학부에 입학할 있다. 파리의 경우 십여개의 대학이 전공별로 나뉘어져있고, 유명한 소르본느 대학은 어문학, 종교, 철학, 예술등의 전공분야만 교육한다 (혹시 소르본느 공학 박사라는 사람이 있으면, 사기꾼이니 조심하길…). 전국에 이런식으로 대학이 평준화되어서 전공별로 존재하니 굳이 파리로 와서 공부해야 하는 이유도 없어서 수도권 집중을 어느정도 막을 수도 있다.

공부를 하고 싶어하면 최소한 기회는 준다. 예비고사만 통과하면 본인이 하고 싶어하는 전공을 배울 있도록 기회를 주고 등록금도 없으니 가난해서 공부 못한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다시말해서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준다. 심지어는 외국인한테도

그러나, 공부를 안하면 시챗말로 얄짤없다”. 평균적으로 학년마다 절반정도를 유급을 시킨다. 대학 졸업은 들어온 수의 10%정도만 있다는 이야기이니, 공부를 안하는 대학생은 도저히 졸업할 수가 없고, 결국 스스로 공부를 포기하게 된다.

한국의 대학들도 이런점은 배웠으면 좋겠다. (지금 학생들인 후배들에겐 미안하지만…) 입학하는 학생들의 수준보다 졸업하는 학생들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야 말로 대학의 수준을 높이는 길이라는 알았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미국의 하버드 대학이 세계 최고의 대학중 하나인 이유가 입학생들의 SAT성적 때문만은 아닐것이다. 어쩌면, 한국의 대학들도 이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학 재정의 대부분을 학생의 등록금으로 충당하는 한국의 사립대학들이 뭐가 아쉬워서 졸업하는 학생들의 경쟁력을 높이려 하겠는가?

프랑스의 중고등학교와 대학들의 학교 순위는 교육관련 전문 잡지에 공개가 된다. 이는 학부모들이 학교를 선택하는 좋은 기준이 된다. 그런데, 한국처럼 입학 점수가 아니라, 졸업생들의 졸업후 사회 성취도, 소득세 납부액을 기준으로 학교의 순위를 매기게 된다. 다시 말해, 중고등학교든 대학이든 학생을 교육시키고 선별해서 사회로 내보내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히 생기는 것이다.

위에도 말했듯이 프랑스는 장학금이 있어야 박사과정을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장학금은 등록금이 아니라 생활비 것이다. 살인적인 파리의 집세와 물가속에 생활 있는 최소의 여건이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현재 기준으로 살만한 동네 (잘사는 동네가 아니라, 안전한 동네) 실면적 50평방미터의 임대료가 1000유로가 넘는다. 장학금은 학교뿐만 아니라 회사나 연구소등에서도 제공하므로, 이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도 대단하다. 물론 해외에서 받아오는 장학금도 괜찮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본인이 다니던 회사나 부모님 직장에서 적당히 장학문서를 짜오는경우도 있고, 실제로도 통한다.

- 아이 (성규) 유치원 사진 (2008 ).. 성규는 앞줄 왼쪽.. 바로 뒤에있는 여자애랑 2007년도에 사귀다가 헤어졌다..더이상 손을 잡는다나… -


임신 5개월부터 한달에 30만원씩 주는 나라

무상 교육말고 프랑스에 살면서 몸으로 느끼는 혜택중 하나는 사회 복지이다. 물론 외국인에게도 프랑스에 장기 체류 (3개월이상) 있는 자격이 생기면 동일하게 주어지는 권리이기도 하다. 결국 이민이 없는 프랑스에서 프랑스 국적자와 외국인 체류자와의 권리 차이는 참정권만 있는 셈이다.

요즘은 한국도 저출산때문에 출산 장려금등을 지원한다고 들었다. 우리도 큰아이가 생겼을때 매달 상당한 보조금을 받았고, 이외에도 집세나 극빈 외국인 (학생이니..) 위한 집세 보조비등을 합해서 한달에 500유로 ( 80만원)정도를 무상 지원 받았었다.

- 성규와 문정..동네 산책하다가..(올 봄) -

물론 프랑스의 불편한 점을 열거하면 끝도 없다. 지하철은 냉방도 안되어 한여름엔 지옥으로 변하고 사방에 찌렁네가 진동하는 소매치기와 거지의 천국이고, 거리엔 수많은 개똥과 쓰레기들, 불법주차로 거리는 엉망에 차선도 거의 안그려져 있고, 무단횡단 천국에 자전거까지 찻길에 섞여 있고, 백화점 지하 주차장은 한시간에 4-5유로를 내야 하고 백화점 한층에 계산대는 한두개 점원도 거의 없고 옷이 사이즈가 없으면 없으니까 사지 말라고 하고, 은행 계좌 열려면 예약해서 상담하고 한두달 걸리는 기본이요, 인터넷 서비스는 한국의 10년전 수준에 그것도 개설하려면 한달은 기다려야 되고, 여권 하나 발급 받는데 두세달은 기본으로 소요되고, 치통으로 죽겠는데 치과 전화하면 약속을 잡아서 2주후에 오라고 하질 않나, 심지어 식당은 식사시간에만 문을 여는 나라….이는 유럽 대부분 국가 또는 미국과도 별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돈보다 사람이 소중하다는 프랑스 국가 이념을 지키기 위해 사람에 대한 복지는 절대로 소홀하지 않는다. 게다가, 옛날부터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지키려는 사회 지도층과 함께 엄청난 누진세율 등을 통해 부의 재분배와 사회 환원을 오히려 철저히 하는걸로도 유명하다. 예를 들어, 아이들 학교 급식비가 부모의 소득에 따라 12등급으로 나뉘어 진다. 다시 말해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같은 음식에 내야하는 비용이 달라진다는 이야기이다. 최저 소득층은 무료 급식이고 최고 소득층과의 차이가 거의 10배가 난다. 이는 성인들의 사회에도 적용되서 근무하던 프랑스 원자력 연구소에서 구내 식당의 음식 가격이 개인 소득에 따라 최대 2 이상 차이가 나는 당연하게 생각한다.

어렸을때부터 당연히 받아드려지는 부의 재분배와 사회주의적 정의는 결국 프랑스라는 나라를 지탱하게 하고 사회 지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현하게 하여 내면의 선진국 이룩하는 근간이라고 생각된다. 비록 사회 시스템이 느리고 답답해 보일지라도 개개인의 권리와 프랑스 국가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정신의 실현을 위해 국가가 국민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면, 프랑스 사람들이 오랜 시간동안 진정한 사회민주주의를 위해 힘써 왔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금연 (2003 7 11)

프랑스에서 살면서 인생에 가장 수확이라면 금연을 들수 있겠다

고등학교 졸업식날 부터 피우기 시작했으니 15년을 하루에 반갑 정도 피웠던것 같다. 낚시를 간다거나 사교 행위 (음주가무, 현찰 박치기 놀이등…) 할때는 당연히 피웠고 아이를 갖고자 했을때 잠시 끊었었지만, 바로 피우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원래도 몸이 약해서 감기도 걸리기도 했지만, 나이가 서른을 넘으니 몸에서 입에서 냄새 나기 시작했다. 속칭 쩔은내 나더라고

가만 생각해보니 담배를 피우시던 (공식적으로는 1991 이후 끊으신 상태..) 아버지 덕분에 어른이 되면 당연히 피는 거라고 생각했었고, 중고등 학교때 재떨이의 꽁초나 안방에 있던 담배갑에 한두번 손을 댔던 추억은 나만 가지고 있던건 아닐것 같다.

2003 2 성규가 태어나면서 한가지 결심을 하게 되었다.

바로 금연!

일단 두가지 이유가 생기더라

첫번째로는 우리 아이가 담배를 배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냄새난다고 뽀뽀도 안한다잖아!!), 두번째는 경제적인 이유로여기서 일반적으로 우리가 피우는 수준의 담배 한갑에 지금 4-5유로 정도 한다. 한달이면 담배값으로 50~60유로에 일년이면 거의 한국에 비행기 표를 살수 있는 돈이 된다. 게다가 논문과정을 하면서 파리 근교 원자력 연구소 주변으로 이사를 가면서 차가 없으면 담배를 못사러가고 담배가게는 주말이나 오후 7 이후에는 문을 닫으니, 담배를 피운다는게 건강은 둘째 치고 극빈의 유학생에겐 참으로 사치스럽고 귀찮은 일이 되어 버렸었다.

담배값이 비싸니 스페인에서 밀수해온 말보로를 피우고 튀니지의 국민담배 “20Mars” 사서 피우고, 암시장을 통해 국산 담배를 피우고쇼를 했다.

어차피 회식도 없는 프랑스 문화에다가 주변에 담배피우는 사람도 없으니, 결국 지금이야 말로 담배를 끊을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성규가 태어나는 보러 한국에 다녀 오던 2003 2 한국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100갑을 사와서 이걸 피우면 끊겠다고 천명을 하기에 이른다. (물론 100갑을 들여오는 불법이다하지만 파리공항은 기본적으로 검색을 하지 않으니…)

그때 마눌님께서 하시던 주옥 같은 말씀..

그걸 피우고 끊어.. 지금 끊고 거기서 비싸게 되팔지…”

진리였다..

아뭏튼 100갑을 다피우는 마지막 시간이 바로 2003 7 11 오후 5시경 그때 키우던 개의 예방접종을 마치고 동물 병원에서 나오던 그때였다. 아직도 그래서 잊혀지지 않는다.

주변에서의 유혹이 없으니 그다지 어렵지 않게 끊을수 있었다. 일단 연구소 컴퓨터 바탕화면에 각종 담배관련 질병 사진으로 도배를 하고, 프린트해서 벽에 붙여 놓고, 껌을 씹고, 하루에도 열두번씩 이를 닦았다. 결국 껌을 너무 많이 씹어서 악관절 장애가 와서 세달간 교정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한대도 피우지 않았다. (너무 자랑스러워!!)

물론 요즘도 담배피우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담배를 피우며, 동안 끊었던 것이 아까워서 울더라게다가 악몽은 군대에 가서 담배피우는 꿈이다!!!

담배는 끊는게 아니라 평생 참는거라고 한다 참고 지내길 바란다..

..

담배끊고 피해를 당한 가족이 있었으니, 바로 키우던 개였다

매번 식사후 담배피우러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었는데, 내가 안나가니 녀석도 화장실을 타이밍을 놓쳐 버린 것이다. 결국 변비에 걸려서….그거 치료하고 하느라 더러운꼴 많이 봤다.


- 키우던 개 - 이름: 티니, : 닥스훈트 장모종 (족보도 있음) – 2006 여름 둘째가 태어나고 내가 하도 출장이 많아져서 한국식당으로 입양 보냈다.. 살고 있겠지….(그냥 식당일뿐이라구!!!) -


그리움

10여년을 외국에 살다보니, 한국에의 그리움이란 뼈에 사무친다… ( 3-4 파견 나와서 사는게 좋은거 같애..). 음식, 친구들, (언어적) 자유로움, 편함 (한국 살기 편하다..진짜) 등등.. 하지만 무엇보다 그리운건 부모님이다.

지난 9 초부터 홀아비 신세로 살고 있다.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일단 애들과 애들 엄마가 한국에 가있는 상태이다. 그렇게 낙관적이지도 비관적이지도 않은 상황이고 조금씩 병세도 호전되어 가고 있긴해도, 곁에서 힘이 되지 못한다는 자식으로서 (게다가 장남인 나로선) 고통스러운 중의 하나이다.

해외에 살면 예상치 못한 시간에 전화가 오면 상당히 놀란다. 특히 부모님이 연로하시거나 편찮으신 경우는 더하다. 심지어 , 주변의 선배들중에는 한국가는 비행기표를 오픈티켓으로 미리 예약해 놓고 사는 분들도 많다. 언제든지 달려가려고

효도는 아무리 지나쳐도 충분하지 않는 그런게 아닐까 싶다

2009 가을

최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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